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휴스턴 로키츠 (문단 편집) === 맥밍 듀오 시대 === 2002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픽으로 만리장성 [[야오밍]]을 영입한 후 2003-04시즌을 앞두고 제프 밴 건디를 감독에 선임, 거기다 경기장도 컴팩 센터(더 서미트)에서 토요타 센터로 옮기고 로고 및 팀 컬러도 빨강/흰색으로 회귀했다. 그리고 야오밍을 중심으로 다시 플레이오프에 얼굴을 내밀게 된다. 물론 1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. 04-05시즌, 내친김에 [[올랜도 매직]]에게 주전 [[포인트 가드|PG]] 스티브 프랜시스와 주전 [[슈팅 가드|SG]] 커티노 모블리까지 주면서 [[트레이시 맥그레이디]]를 영입하여 [[트레이시 맥그레이디|맥]][[야오밍|밍]] 듀오를 결성, 순식간에 다시 서부지구의 강자로 떠오르게 되었다. 근데 이번에도 1라운드에서 댈러스에게 4-3으로 깨졌다. 그래도 맥밍듀오는 당시 NBA를 통틀어 최강의 듀오였기에 휴스턴은 충분히 우승을 노릴만 했었지만, 05-06시즌, 둘이서 동시에 드러누워버리면서 서서히 불안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. 결론부터 말하자면 맥밍 듀오는 04-05시즌을 제외하면 한명이 일어서면 한명이 뻗고 다시 한명이 회복되면 한명이 드러누워버리는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. 05-06시즌은 그렇게 팀의 원투펀치가 동시에 실신하면서 접게 되고, 06-07시즌, 이번에도 야오밍은 중간에 3개월을 쉬었다만 이번엔 다행히 맥그레이디가 그럭저럭 건강했던 관계로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또다시 1라운드에서 [[유타 재즈]]에게 4-3 패배했다. 맥밍 듀오는 잘 했는데 나머지가 못 받쳐줬고, PG진이 우글댄 것과 셰인 베티에가 2시즌 연속으로 백업에서 제 몫을 못한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. 07-08시즌에는 스티브 프랜시스가 돌아오는 한편 존 루카스 3세와 밥 수라 같은 일부 잉여 PG들을 정리했고, 정규시즌에선 무려 '''22연승'''을 기록하지만 이번에도 [[야오밍]]은 16연승하고 누웠다. 플레이오프에서 [[트레이시 맥그레이디|맥그레이디]] 혼자 분전하긴 했지만 [[유타 재즈|유타]]에게 4-2로 패했다. 08-09시즌 이번에는 [[야오밍]]은 건강했는데 [[트레이시 맥그레이디|맥그레이디]]가 35경기 치르고 뻗었다. 그래도 야오밍의 활약으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[[LA 레이커스]]와 격돌...했는데 시리즈중에 야오밍마저 뻗고 만다. 맥밍듀오가 없는 상태에서 루이스 스콜라, 애런 브룩스, 셰인 베티에 등이 분전하며 7차전까지 끌고갔지만 결국 높이의 열세로 분패하고 말았다.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부상당한 야오밍은 09-10시즌 자체를 통째로 접는다. 09-10시즌엔 [[릭 아델만|아델만]] 감독과 불화가 생긴 [[트레이시 맥그레이디|맥그레이디]]를 아예 트레이드 시켜버리면서 [[트레이시 맥그레이디|맥]][[야오밍|밍]]듀오를 해체시킨다. 상기했듯이 [[야오밍]]도 시즌을 통째로 접은 관계로 팀의 코어가 없는 상태에서 나머지 선수들이 그럭저럭 분전했으나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. 10-11시즌엔 한 시즌 푹 쉬고 돌아온 야오밍이 또 다시 5경기 뛰고 드러누웠다. 맥그레이디의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[[케빈 마틴]]을 중심으로 새 판을 짜기는 했으나 전력의 열세로 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다. 그리고 10-11시즌 종료후 야오는 은퇴를 선언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